미국의 흑인영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당혹해하는 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고난이 깊이에 당혹해하고, 그 고난이 우리를 위한 것이기에 또한 당혹스러워합니다. 그 당혹스러움을 받을 때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1절
거기는 골고다 십자가 근처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그때. 구속사건은 과거의 한 지점의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하여 체험되어야 할 현재형의 사건입니다.
2절
나무는 구약에서 저주받은 자의 표상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인류를 위해 나무에 달리심으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신명기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3절
주님께서 목숨을 잃으실 때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종말이자 하나님의 심판의 때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때입니다.
4절
주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십니다. 부자들의 묘에 들어가심은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찬양 가사는 감성적이고 서사적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고통당하는 주님께 주목합니다. 직접적인 대속에 대한 가사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2절 중반에 '내 지은 죄로 인해 주 형벌받았네'가 가장 선명한 대속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님의 고난을 강조하면서 그 고난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반복합니다.
1절
거룩하신 주님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져 상해있습니다. 그 가시관으로 조롱과 욕을 상징합니다. 그 가시관의 고통으로 아침해처럼 밝던 주님의 얼굴이 고통과 치욕으로 창백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얼굴에서 기쁨과 미소가 아니라 고뇌와 눈물, 고통을 읽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2절
주님의 고난이 죄인 위함이라 말합니다. 그 죄인은 바로 화자 자신입니다. 2절은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지은 죄를 은혜와 사랑으로 지켜 달라 부탁합니다.
3절
3절은 감사입니다. 끝없고 한없는 주님의 사랑을 고마워합니다. 보잘것없는 나를 주님의 것 삼아 달라 부탁합니다.